거짓 집착 리듬

“너 거짓말하면 진짜 혼난다!”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10세 소년은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예두삼은 아들의 두 뺨을 손바닥으로 움켜쥔 채 다시 한번 협박 덩어리를 뱉었다. “아빠는 거짓을 그 누구보다 금방 맡을 수 있어. 알겠니?” 그는 아내가 만들어 놓은 아침밥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바로 회사로 직행했다. 차고 씁쓸한 공기가 그의 귀를 괴롭힌다. 이내 들어선 지하철 플랫폼. 그곳엔 적절한 크기의 가방을 어쭙잖게 들고 하염없이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벌레 같은 가부장적 형태의 위선자들이 즐비했다. 가만히 그 광경을 보며 거짓 테두리를 상상해본다. 2-3, 3-1, 4-5 스크린도어 맨 앞에 서 있는 남성들을 중심축으로 두고, 각 줄의 3, 4번째 줄의 사람들 가슴 정중앙과 허리를 변곡점으로 찍어, 자신만의 거짓 파생 범위를 상상 속 빨간 줄로 그어보는 예두삼. 희미하게 생각나는 거짓 감정, 생각, 관계에 얽힌 단어들이 그 빨간 줄에 하나둘씩 빨랫감처럼 걸린다. 이를 토대로 자신의 현재 컨디션을 측정해본다. 나름 거짓 리듬의 템포가 사실감 있게 순환되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 키득키득 웃으며 안도하는 예두삼. 어깨를 들썩거리며 기이하게 웃고 있는 예두삼 뒤에, 검은 우비를 입고 있는 황홀한 인상의 70대 노인이 그를 기가 차듯 쳐다본다.

회의 속 공상

오후 2시 20분, 거짓 작가팀 부수장 ‘안이주’의 외침이 들린다. “자, 모두 회의 테이블로 재빠르게 모이세요. 이번 ‘시끄러운 거짓 아내의 오해에 대한 이해 금기’에 대해 함께 구상할 플롯이 산더미입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테이블로 모이는 거짓 작가팀 일동. 예두삼 또한 산뜻한 발걸음으로 회의 테이블 상석에 앉는다. 안이주의 주도로 열정적인 회의가 시작된다. 예두삼은 자신의 앞에 놓인 전용 캘린더를 멍하니 보고 있다. 일주일 후인 12월 9일에 빨간색 글씨로 ‘아들 생일’이라고 적혀 있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예두삼. 한창 거짓 아내의 12가지 오해에 담긴 매혹적인 진실들을 팀원들에게 설명하던 안이주는 예두삼의 면상 앞에 자신의 면상을 들이민다. “수장님! 어떻게 할까요?” 놀란 예두삼은 “어, 그렇게 진행해.”라고 가볍게 툭 던진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안이주. 아랑곳하지 않고 박수를 ‘탁탁!’ 두 번 치며 활기차게 팀원들을 프로젝트 실천으로 이끈다.

테두리 확인

“수장님. 그럼 퇴근해보겠습니다.” 거짓 작가팀 일동이 이와 같은 말을 촘촘하게 내뱉으며 퇴근한다. 사무실은 점점 텅 비어갔다. 이내 단둘이 남은 안이주와 예두삼. 안이주는 예두삼 앞으로 걸어가 강렬한 말을 쏘아붙였다. “진실된 무기력 또한 거짓 위선으로 감춰야 합니다. 이곳 수장은 그 누구보다도 진실을 거짓으로 변환시키는 것에 거대한 의무감이 있어야 합니다.” 예두삼은 씩 웃더니 안이주의 실루엣을 자신의 손가락들을 이용해 테두리 긋기를 실행한다. 그녀의 양쪽 귀를 중심축으로 두고, 그녀의 양쪽 팔꿈치와 무릎을 변곡점으로 찍어, 그녀의 거짓 파생 범위를 상상 속 빨간 줄로 그어본다. 뿜어져 나오는 그녀의 거짓 리듬이 적당히 울렁거린다. 그녀의 말이 일말의 거짓도 없는 따뜻한 뱉음임을 확인하는 예두삼. 한숨을 푹- 쉬는 안이주는 그를 사내 16층에 있는 ‘막담 포차’로 끌고 간다.

포차 속 담소

16층 막담 포차로 들어서니 익숙한 야만적 소리가 해당 포차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칭찬을 강하게 요구하는 도넛 판매원의 레시피 제작을 담당한 비속어 콘텐츠 창작자의 우스운 경력을 동네방네 떠벌리는 어느 재벌 3세의 대리모와 같았다. 표유한의 형광 질주 일화를 묵묵히 들으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셰크린. 그녀는 포차에 들어서는 예두삼을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든다. 표유한은 어색하게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곤 이내 다시 자신의 일화를 셰크린에게 무참히 선포한다. 그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로 예두삼을 끌고 가는 안이주. 자리에 앉더니 막담 포차 주인 겸 요리사인 ‘규배호’를 힘차게 부른다. 부리나케 달려오는 규배호. “버터 새우 그라탕이랑 야크 크림 매운탕, 이스키 생맥주 500cc 2잔 부탁해.” 해맑게 웃으며 안이주를 사람 좋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규배호. “오늘도 오셨네요. 요즘 거짓을 가정 화법으로 칠하는 것이 쉽지 않죠? 그것은 마치 탕과 찌개를 가지고 조미료와 육수를 흑백으로 구분하는 문화 양식의 수정과 굉장히 유사하니까요.” 숟가락을 들고 규배호의 손등을 탁! 치는 안이주. “잔말 말고 음식이나 대령해. 포. 차. 주. 인!” 규배호는 실실 웃으며 주방으로 달려간다. 멍하니 공상에 잠겨 있는 예두삼. 안이주는 숟가락으로 예두삼의 이마를 탁! 친다. “그깟 거짓 테두리로 아들의 탄생까지 판단하고 있습니까?” 예두삼은 처연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본다.

기준점 말살, 거짓 정체성

이스키 생맥주를 쭉 들이키는 예두삼. 슬픈 동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한탄을 뱉는다. “사랑이 거짓 테두리 변곡점에 묶여 있었어. 사람이 사랑을 논하는 게 진실이 되려면 거짓의 중심축 밖에 그 단어들이 널려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단 말이야. 난 이제 어떻게 그 거짓들을 진실로 포장할지 한번 고민해보려고 해.” 예두삼이 뱉은 문장엔 합당한 이성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안이주의 눈에는 그저 감성에 자신의 거짓을 묶은 조각난 승려들의 인격들처럼 보였다. 안이주는 야크 크림 매운탕을 국그릇에 가득 담아 쭉- 들이키곤 뻘겋게 물든 자신의 혀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짓이라고 보이는 것들에 기준점을 제발 두지 마세요. 당신의 테두리는 물론 여러 일에 관해 유용하지만, 다른 부분에선 오히려 거짓을 날조하는 꼴이 됩니다. 자신이 스스로 단정한 거짓을 진실로 거짓되게 보려고 시도하세요. 분명 조금이라도 진실의 형태를 유지하는 본연의 자태가 있을 겁니다.” 그러곤 자신의 가슴 왼쪽에 달린 명찰을 확! 부러뜨리곤 멀리 던지는 안이주. ‘안이주’라고 적힌 명찰이 표유한이 있는 테이블 앞에 도착한다. “뭡니까!” 강력하게 선포하는 표유한. 안이주는 그를 가볍게 무시한 채 예두삼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인다. “제 본명은 유현주입니다. 유현주. 당신의 이름도 예두삼이 아니죠?” 피식 웃는 예두삼.

진실 마주하기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온 예두삼. 아들의 방으로 슬며시 들어간다. 그가 곤히 자는 모습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아들의 두 뺨을 손바닥으로 살짝 누른 채 공상에 잠긴다. 거짓 테두리의 중심축들을 서서히 제거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변곡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쌍곡선 형태의 빨간 줄을 맑고 하얀 목화들로 꼼꼼하게 칠한다. 순간 아들이 눈을 뜬다. 그는 동공을 이리저리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보며 묻는다. “아빠, 괜찮아?” 아들의 진심이 거짓 테두리 단어 속에서 멀리 떨어진 채, 그 단어 자체의 심박수를 확연히 발산시키는 것을 예두삼은 몸소 느낀다. 말없이 아들을 꼭 안아주는 예두삼. 한편 아버지의 납골당을 찾은 유현주는 하염없이 그의 사진 속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눈에 증오가 점점 채워진다. 가녀린 손가락들로 아버지의 사진 속 얼굴에 거짓 테두리를 그어본다. 표독한 아버지의 얼굴에 거짓 테두리가 생성되지만, 이내 중심축들이 무너지며 그 형태가 사라진다.

DND VIDEO : https://www.youtube.com/watch?v=RE-CRDD2w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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