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감지자

증기주먹 크기의 돋보기를 가지고 복도를 기어 다니는 청다린. 그녀는 지옥 평가팀 수장이다. 지상 9층은 항상 그녀의 기어 다님이 일상이다. 정해진 시간은 없다. 예민한 그녀의 촉수가 반응할 때만 해당 행동이 발동한다. 그녀는 늘 자신의 팀원 모두에게 말해왔다. 지옥 평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이한 변화와 그로 인한 위협의 정도라고 말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항상 특이한 변화를 잘 감지했다. 부서 내 팀원들의 미묘한 감정선, 신체의 변화, 사물의 위치까지도 모두 그녀의 레이더망에 들어있었다. 따라서 팀원들은 그녀를 절대 속일 수 없었다. 속이고자 마음을 먹으면 곧바로 그녀의 무서운 선포가 시작되었다. 부서 내 탕비실로 슬며시 해당 인물을 데리고 가 여태까지의 관찰을 토대로 한 경고를 시작했다. 그 경고는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조언과는 달랐다. 상대방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곤, 설탕을 정확히 28g 정도 뜨거운 커피에 타 약 5초 간격으로 상대방 손등에 커피를 붓는 기이한 행동을 했다. 그녀의 악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여 성인 남성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당황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평소에는 친절함의 끝을 달리는 청다린. 하지만 어떠한 변화가 감지되고 그것이 위협을 준다고 생각하는 순간, 폭풍같이 돌진하는 매서운 꿋꿋함을 자신의 모든 신체 부위를 사용해 보여줬다.

온도 변화 집착기

어느 날, 회의 중 잠깐 화장실을 간다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간 청다린이 3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팀원 일동이 그녀를 찾기 위해 화장실을 가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해당 팀의 부수장인 ‘혼라카’가 9층 중앙 로비에서 기어 다니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청다린은 왼쪽 손을 자신의 이마에 댄 채, 오른손에 있는 돋보기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참고로 DND 사내 팀 중 지옥 평가팀에만 부수장이 존재했는데, 그 이유는 늘 변화를 병적으로 찾아다니는 청다린 때문이었다. 변화 감지 강박으로 인해 부서 사무실 자리를 자주 비웠던 그녀 때문에 팀 전체 회의를 거쳐 임시 수장인 부수장을 선발한 것이다. 혼라카는 그녀의 옆에 서서 무엇을 감지하고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청다린은 ‘나의 신체 온도를 변화시키는 조숙한 생명체의 존재가 느껴져.’라는 고대 그리스 소설에나 나올법한 말을 뱉었다. 혼라카에겐 그 어떤 온도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를 잠시 놔두기로 했다. 여태까지 그녀가 발견한 변화들이 모두 500점 이상의 지옥 점수를 기록했었기 때문이었다. 지옥 평가 만점이 700점인 것을 고려하면 거의 모든 획기적인 변화를 수장 청다린이 관찰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저온 증기 진동기

청다린은 약 2시간 동안 온도 변화를 감지했다. 자신의 이마 내부에서 마이크로 수포 입자들이 진동하고 있다는 착각 아닌 진실을 포옹한 것이다. 당시 9층 로비 온도는 약 23도였는데, 그녀는 자신의 이마 내부가 이보다 약 4~5도 정도 더 높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이마에 얹었던 손을 슬며시 떼고 돋보기를 통해 자신의 손 마디마디를 세세히 보더니 그녀의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간 듯 미소를 지었다. 마치 거룩한 마음으로 임신에 응한 어부의 아내를 비웃는 혼전순결 단어 창시자의 두 번째 낙태를 미리 예견한 여치의 미소처럼 음흉한 형태로 말이다. 그녀의 손 마디마다 약 0.5mm 크기의 벌레들이 줄지어 춤을 추고 있었는데, 더욱 기이한 사실은 그 벌레들이 약 1.5초 간격으로 제자리에 멈춘 후 점프를 했다는 것이다. 약 20마리 정도의 벌레들이 그렇게 점프를 함으로써 그녀의 손엔 미세하게 진동이 일어났다. 이 광경을 10분 정도 돋보기로 지켜본 청다린은 손을 그대로 편 채, 지상 3층에 있는 사내 청소팀을 방문했다. 참고로 사내 청소팀은 수장인 큐크, 팀원 클로에가 팀원 전부였다. 청소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수장인 큐크가 어떤 구역, 사물, 생명체를 청소하기에 앞서 해당 것들을 분석하여 이에 맞는 청소 도구를 선정하면 부하직원인 클로에는 그의 명령에 따라 청소하는 방식이었다. 청다린은 사내 청소팀에 도착한 후, 곧바로 큐크에게 자신의 손바닥을 내보였다. 큐크는 돋보기를 뺏어 그녀의 손바닥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뒤에 있던 클로에를 향해 ‘저온 증기 진동기!’라고 외쳤다.

증기 굉음 청소

증기클로에는 지름 약 2m에 달하는 영롱한 빛깔의 원형 사물함 속에서 정확히 지름 15cm 크기인 물뿌리개 모양의 진동기 20개가 담겨있는 자루를 꺼냈다. 이후 그곳에서 진동기 하나를 꺼내 청다린의 손바닥에 붙이고 주머니에 있던 무선 리모컨의 전원을 켜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진동기에 뚫려있는 200개의 구멍에서 새하얀 증기가 사내 청소팀 사무실의 반을 채울 정도로 나왔으며, 동시에 시끄러운 굉음이 스타카토 형식으로 반복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렇게 약 5분이 지난 후, 청다린은 돋보기로 그녀의 손을 살폈더니 이전까지 줄을 지어 점프하던 벌레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큐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청다린에게 “클로에와 함께 9층에 올라가 이 저온 증기 진동기로 모든 벌레를 말살시키세요. 단 진동기 4개 이상을 사용할 경우 사람에 해가 될 수 있으니 꼭 멀리 떨어져 사용하세요.”라며 속삭인 후에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클로에와 청다린은 여러 진동기가 들어있는 자루를 함께 들고 9층으로 올라갔고, 클로에는 곧바로 모든 진동기를 벌레 발견 근원지였던 로비를 중심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허나 열심히 해당 진동기들을 붙이는 클로에와 달리, 청다린은 잠시 뒷걸음질 치더니 허공을 응시하는 수상한 행동을 보였다. 마치 불순함과 공정함, 무의식과 파멸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교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클로에는 그런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진동기를 다 붙인 후, 청다린에게 무선 리모컨을 쥐어주며 오후 퇴근 전까지 사내 청소팀으로 반납을 요청한 후에 유유히 해당 층을 떠났다. 클로에가 떠나자마자 청다린은 갑자기 지옥 평가팀에서 소형 관찰 카메라 5대를 가져와 진동기 20대가 붙어 있는 로비 곳곳에 설치했다. 이후 지옥 평가팀으로 다시 돌아가 팀원 전원에게 “모두 로비 중앙에 둥글게 모여 앉아 지옥 평가 긴급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명령했다. 혼라카를 비롯해 모든 팀원이 어리둥절했지만 수장의 명령이기에 1분 안에 로비 중앙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청다린은 홀로 지옥 평가팀에 남아 여러 관찰 카메라가 담고 있는 화면을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에 연결하였다. 그리고 지옥 평가 점수 종합서를 책상 서랍에서 꺼내 자신의 동공을 1.5배 서서히 확장시키더니 손에 쥐고 있던 무선 리모컨의 전원을 눌렀다. 모니터는 금새 하얀 증기로 가득찼고, 로비에 있던 팀원들은 자신의 이마와 목을 번갈아 두드리며 엄청난 고통을 호소했고, 굉음 때문인지 관찰 카메라가 심각하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SAD RANK POINT

청다린은 증기 속에서 고통받는 자신의 팀원들의 특이 행동들을 모조리 지옥 평가 점수 종합서에 기록했다. 그녀는 그 어떠한 인간성도 찾아볼 수 없는 잇몸과 침샘의 상호작용을 몸소 표출하며 짐승의 모형을 원하는 자태를 뽐냈다. 증기 발사 1시간 후, 청다린은 로비로 조심스럽게 나갔고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각 팀원의 이마와 목엔 새하얀 증기가 물들어 있었고,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응고된 혀가 정확히 천장을 향해 수직으로 솟아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팀원의 반은 천장을 향해 누워 있었고, 나머지 반은 선 채로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청다린은 이 모든 형태를 지옥 평가 점수 종합서에 기록한 후에 곧바로 점수 계산에 돌입했다. 643점이라는 역대 최고 지옥 점수를 얻었던 난수적 복수 기형 모델 HOSE-VAU의 기록을 이번엔 기필코 깨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얼굴에 가득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에서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깊은 비명이 나왔다. 622점이라는 아쉬운 점수가 나온 것이다. 그녀는 곳곳에 붙어있던 진동기들을 모조리 떼어 박살 내며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힌 인간의 군상을 제대로 표출했다. 그러던 와중, 누워있던 혼라카가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아 눈을 슬며시 떴다. 주위를 둘러보자 고통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수장 청다린의 모습이 보여 잠시 그녀를 지켜봤다. 청다린은 이를 금방 알아차리고 혼라카의 곁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녀는 혼라카의 축소된 동공에다 자신의 붉게 물든 기이한 동공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한 마디를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SAD RANK POINT.”

DND VIDEO : https://www.youtube.com/watch?v=Eiwq47YMyLY&t=74s
DND 청소 속보 : https://dndnews.co.kr/%eb%ac%b4%ec%8b%9d%ed%95%9c-%ec%98%a4%eb%ac%bc-%ed%98%84%ec%9e%a5-%ec%9d%b4%eb%aa%85-%ec%b2%ad%ec%86%8c%ea%b8%b0%eb%a1%9c-%eb%8c%80%ec%9d%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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