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동공

차가운 살가죽 냄새만이 은은하게 풍길 뿐, 미토가 오전에 봤던 나체는 사라지고 없었다. 시체의 알량한 무게로 인해 자국이 난 흙바닥을 마구 발길질하는 윤장하 순경. 이는 마치 구완옘에 대한 의식적인 폭력처럼 보였다. 한편 담배를 맛깔나게 피고 있던 면종식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구완옘의 어깨를 툭 쳤다. “어떻게 보십니까? 나체의 행방을 아시겠습니까?”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순간 눈을 확 뜨는 구완옘. 순간 그의 동공이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이를 재빠르게 눈치챈 미토는 면종식에게 어떤 기괴한 네이밍을 뱉어 그의 시선을 끌었다. “능수문란 나체와 응수능란 실종!” 면종식을 비롯한 경찰 일동은 미토의 미간 정중앙을 표독하게 바라봤다. “이 사건 파일의 이름은 이것으로 합시다! 정확한 나체의 문란함과 비루한 나체의 실종이 간결하게 얽혀있습니다!” 이후 윤장하 순경은 그녀의 발언에 심술이 났는지 폭언을 뱉었고, 면종식은 그녀의 붉어진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한 마디를 쏘아댔다. “Respect!” 그의 미지근한 입김이 미토의 콧잔등과 광대에 스산하게 퍼졌다. 순간 한새리 순경이 면종식의 이름을 당차게 외쳤다. 그녀의 손가락은 나체가 발견된 장소에서 약 20m 떨어진 하수구 뚜껑 위에 놓인 크로스 형태의 빨간 천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편 구완옘의 동공은 더욱 붉게 물들고 있었다.

무면 인간 미로

팍! 면종식은 하수구 뚜껑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놀랍게도 하수구 안엔 크로스 형태로 된 수십 개의 빨간 천들이 마구 얽혀있었다. 한새리, 윤장하 순경은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해당 천들을 몸으로 뚫으며 하수구 내부로 진입했다. 면종식은 특유의 날카로운 치타 눈매로 구완옘과 미토를 노려보았다. 순간 구완옘의 붉은 동공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미토는 그런 구완옘의 어깨를 잡으며 차분하게 설득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여기서 당신의 일탈 확정 분노가 일어난다면 능수로 32구역이 곤란에 빠질 것입니다.” 뚜렷한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 맺힌 것을 본 구완옘은 이내 자신의 피를 다시 동공으로 불러들였다. 그러곤 앞서 하수구 내부로 진입한 순경들을 따라 이들도 빨간 천들에 몸을 맡기며 어둠을 향해 다가갔다. 오직 핸드폰 손전등에 의존한 채 끝없는 어둠 속을 걸었다. 곳곳엔 붉은 천들이 직선, 곡선, 3차원 등의 형태로 행위예술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잠깐의 두려움과 해학, 끔찍한 모호함과 질척거림을 소유한 인간들의 모습과 같았다. 간혹 해당 광경을 보고 달콤한 망상에 빠져 미토나 구완옘의 발걸음이 느려질 때면, 면종식은 그들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붉은 동공을 억지로 누르며 구완옘은 그의 압박을 버텨냈고, 미토는 그런 구완옘을 바라보며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그러다 약 20분이 지난 후, 시멘트 형태의 거대한 벽들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해당 벽들의 안은 미로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가는 구완옘과 미토, 그리고 면종식과 순경들. 수백 개의 얼굴 없는 나체들이 춤을 추며 그들을 맞이했다. 잠시 공포를 느끼는 구완옘. 그러다 시멘트 벽을 두 손으로 쓱-만지는 구완옘. 갑자기 그의 붉었던 동공이 검게 변했다. 이를 본 미토의 입가엔 웃음이 번졌다.

익숙한 진동, 밀착 닿기

약 2초마다 14mm/s-pk 크기의 진동이 일어나는 것을 구완옘은 똑똑히 느꼈다. 마치 과거 옥스와 타바코의 혼합 당시 느꼈던 쾌락이 손바닥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한편 미토의 미소는 어느새 폭소로 이어져 있었다. 어둠, 미로, 면종식에 대한 잠깐의 공포가 이젠 우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면종식은 이 둘의 기이한 모습에 화가 잔뜩 났는지 외마디 비명을 지른 후, 구완옘을 시멘트 벽에 밀쳤다. 팔꿈치로 그의 목을 꽉 조였다. 하지만 구완옘의 얼굴은 웃음으로 뒤덮인 광기 그 자체였다. 이에 당황한 면종식은 그에게 잠시 떨어진 후, 앞서가던 순경들을 불렀다. 순간 구완옘은 “이 시멘트는 내 정이며, 내 것이며, 내 공이다.”라고 호통치듯이 뱉음과 동시에, 상의 탈의 후 시멘트 벽들에 자신의 몸을 막 비볐다. 점차 유연한 자태로 변하는 시멘트 벽들. 그 굴곡들이 매우 심해진다. 이후 곳곳에 있던 무면 나체 인간들이 그 굴곡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윤장하, 한새리, 면종식의 얼굴들에도 점차 굴곡이 생기며 수려한 함몰이 이루어진다. 이질적인 굴곡들로 이루어진 파도와 함께, 수천 톤의 시멘트 가루들이 금세 뿌연 안개 형태로 해당 지하 공간을 뒤덮는다.

초감각 재생 시뮬레이션

‘SUCCESS!’ 발랄하면서 우쭐대는 음성이 지하 4층 ‘초감각 실험소’에 울려 퍼졌다. 시뮬레이션 기계 안에 들어가 있는 구완옘을 향해 누군가 소리친다. “야! 성공했으니까 나와! 이제 내 차례야!” 신경질적인 해당 소리에 깨어나는 구완옘. 기계 밖에서 검게 얼굴이 물든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윤지상이 보인다. 시뮬레이션 기계 밖을 나가는 구완옘. 윤지상은 씩씩거리며 “검버섯 수집 집단 살인 기행!”이라고 외친다. 실험소 직원은 해당 문구를 시뮬레이션 기계에 입력한 후에 시작 버튼을 누른다. 강력한 폭발음이 발생함과 동시에 거대한 시뮬레이션 기계가 3차원과 4차원 형태를 넘나들며 춤추듯이 움직인다. 구완옘은 어느새 지하 3층 위기 생산소로 돌아와 시멘트 의자에 앉는다. 시멘트 의자를 슥- 손바닥으로 만져보는 구완옘. 그의 감각이 점차 살아난다. 시멘트에 대한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다. 순간 누군가 노크를 한 후 생산소 안으로 들어온다. 구완옘에게 하나의 문서를 툭! 던지는 DND 수장. 구완옘은 천천히 해당 서류를 펼친다. 서류 첫 장엔 ‘능수로 32구역, 크로스 인간 포획’이라는 문구가 굵은 글씨로 쓰여있다. 다음 장을 넘겨보니 흑백 사진의 여구욱과 면종식 면상이 박혀있다. 순간  DND 수장은 짧지만 간결한 기합을 외친다. 파괴적인 발걸음 소리를 내며 해당 생산소로 금세 들이닥치는 기본 인력 사무실 직원 10명. 그들은 모두 온몸에 시멘트 가루를 묻힌 채, 붉은 크로스 형태의 칼자국들을 이마에 새기고 있었다. “크로스는 크로스로 잡으세요.” 믿음이 절실히 담긴 미소를 띠며 구완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미는 DND 수장.

DND VIDEO : https://www.youtube.com/watch?v=DegYLb8c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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