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경보 발동

DND어느 날 DND 사내에 있는 230개의 경보기가 끔찍한 엇박으로 사이렌 소리를 터뜨렸다. 사내 전 직원은 보통 때면 사내 선포실의 선포를 잠시 기다렸겠지만, 이번엔 당장 로비로 달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평소처럼 적당한 수준의 위험을 나타내는 옐로우 경보가 아닌, 전 직원의 도움이 필요한 레드 경보가 그 영롱한 빛을 띠며 울렸기 때문이다. 이후 약 5분 이내로 각 부서의 수장을 비롯해 임원들까지 모두 1층 로비에 모였다. 로비에 모든 직원이 모이자 그제야 레드 경보의 모든 소리와 빛이 사라졌다. 순간 로비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원통형 구조물에 누군가 올라섰는데, 그는 바로 사내 선포실 수석 아나운서 ‘삼춘우’였다. 그는 마이크를 오른손 검지와 약지의 중간 마디로 살짝 움켜쥐곤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DND 창립 이래 2번째 레드 경보가 오늘 발동되었습니다. 모두 아시리라 믿습니다. 해당 경보는 여러 자극과 영감을 우리의 땀샘에 산뜻한 미열을 일으켜 심장의 우심방 32번 신경계의 윤회를 조력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뭔가 마이크 음질이 투명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삼춘우는 로비 가장자리에 있는 지름 약 5m에 달하는 정사면체 쓰레기통에 마이크를 냅다 던져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목젖을 왼손 중지로 3번 톡톡 두드려 다듬더니, 특유의 명징하고 포근한 소리를 내어 충격적인 선포를 했다.

도베르만 12인 탈출

“15층 인간 변화 분석팀은 IQ 60 이상인 도베르만 12마리를 한 집안의 가장(家長)인 남성 12인과 결합하는 변화 실험을 작년부터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실험 도중 해당 결합 과정에 오류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도베르만 12마리가 탈출하여 사내 곳곳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들을 발견할 시 지금 나눠 드리는 무선 초음파기를 사용해 기절시킨 후, 분석팀으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는 얇은 부탁이 아닙니다. 두터운 명령입니다.”라고 말이다. 삼춘우는 해당 선포를 끝냄과 동시에, 수많은 직원 사이에 껴있는 인간 변화 분석팀 수장 ‘슈미츠’를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참고로 슈미츠는 지난 아가미 주입 사태로 성대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삼춘우에게 대신 선포를 부탁했던 것이다. 이후 로비 1층에 있는 DND 기본 인력 사무실에서 총 30명의 단기 인력 직원들이 수백 개의 무선 초음파기를 가지고 나와 사내 직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렇게 한창 나눠주던 중, 급하게 삼춘우가 ‘주목!’이라고 외치며 이목을 다시 끌었다.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도베르만 12마리 중 1마리는 외피가 인간으로 80% 정도 변한 상태이며, 그 외피는 집안 가장(家長)의 모습을 확연히 나타내고 있습니다.”라며 조촐한 발성을 내뱉었다. 한편 선포 내내 반쯤 졸고 있었던 퍼레이드 광고팀 수장 ‘그니쿨’은 마지막 삼춘우의 말에 잠이 확 깼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사무실로 걸어갔다. 그의 모습은 마치 조선 최고의 장수를 갈망하는 중세 화가의 그림 속 여백을 비평하는 어느 무식한 소시민의 굴곡진 인공 콧날의 당당함과 같았다.

무언의 계약 선포

당시 퍼레이드 광고팀은 이전 아이스크림 광고의 엄청난 성공으로 전 세계 식품 회사들에게 하루에 약 17개의 러브콜을 받고 있었다. 그니쿨은 아이스크림의 단맛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자는 선포를 팀원들에게 내렸고, 그 결과 다음 퍼레이드 광고는 사탕으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사탕의 핵심 가치는 아이 본연의 자태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10년 동안 사탕 판매 정상을 굳건히 지킨 ‘CHILD FETISH’라는 기업이 DND에 러브콜을 보내왔고, 그니쿨은 쿨하게 그들의 광고 대행을 맡기로 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건 CHILD FETISH 수장이 그니쿨과 대면 계약을 진행할 당시에 붉은 종이 한 장을 뜬금없이 내민 것이었다. 해당 종이엔 DND 수장의 글씨로 쓰인 문장 하나와 함께 그의 사인이 있었다. 문장의 내용은 ‘향후 CHILD FETISH와 광고 계약을 진행한다면, 광고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어린아이로 설정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니쿨은 마음 같아선 책상 위로 올라가 천장을 향해 강력한 펀치 범벅을 행하고 싶었지만, 수장의 계약 조건 선포였기에 그럴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사탕 퍼레이드 광고의 등장인물은 오직 어린아이로만 결정되었고, 그니쿨은 휴먼 탐색팀에 의뢰해 약 2초 동안의 맑은 눈빛과 약 1초 동안의 선악이 공존하는 눈빛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아이를 섭외하였다.

포획을 가장한 섭외

한편 삼춘우의 선포를 듣고 사무실로 온 그니쿨은 허름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벗어 던지고 자신의 전용 옷장에서 말끔한 고급 원단 재질의 정장을 입었다. 아세톤 향과 산딸기 향이 3:2 비율로 혼합된 향수도 마구 뿌리며 꽃단장도 하였다. 이는 마치 오색 빛깔의 복주머니를 혼인한 아내와 함께 나눠 가지려는 남편을 짝사랑하는 수컷 뻐꾸기의 짝짓기 신호와도 같았다. 그니쿨은 비장한 표정을 한 채 사내 곳곳을 뒤집고 다녔다. 바로 외피가 인간 형태인 도베르만을 포획하기 위함이었다. 외피가 도베르만인 도베르만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마스터 DND 플랜’이라는 목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인간 외피 도베르만 포획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보였다. 그리고 약 2시간 동안 남들보다 약 2.4배 빠른 걸음과 눈알 굴림으로 찾아다닌 결과, 지상 12층 피부 세포 관리실 뒷문 앞에 놓인 직사각형 형태의 환풍구를 분노가 섞인 자태로 응시하고 있는 한 도베르만을 마주했다. 그것의 외피는 누가 보더라도 한 집안의 가장(家長) 노릇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행동은 역시 일반 도베르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기에, 그니쿨은 조심스레 그것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것은 곧바로 붉은 눈동자를 가동하며 위협을 예고하였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포획할 것이라는 강력한 두려움을 느낀 듯했다. 그러자 그니쿨은 무릎을 꿇고 그것에게 손을 친절히 내밀었고, 동시에 표정은 살기를 아예 잃어버린 독수리와 같이했다. 그는 약 5분 동안 해당 자세와 태도를 유지했으며, 인간 외피 도베르만은 약 4분 30초가 되었을 무렵 점차 온순한 분위기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간 그니쿨의 손과 인간 외피 도베르만의 뺨이 알맞게 맞닿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는 일방적 포획이 아닌, 상호 긍정 포획의 정의를 새롭게 구축하였다.

DND FETISH 탄생

그니쿨은 인간 외피 도베르만을 목줄로 조심히 끌며 DND 수장실로 향했다. 그는 수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장 구두 안에 있는 ‘마스터 DND 플랜 카드’를 던지며 말했다. “CHILD FETISH에게 허락한 조건을 모두 취소하고, 모든 권한을 저에게 뿌려주시기 바랍니다.”라며 혼탁한 호통을 쏘아댄 것이었다. 수장은 마스터 DND 플랜 카드를 사내 규칙에 맞게 발동시키려던 찰나에 한 가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DND더라도 다른 회사와의 계약을 무참히 파기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사탕 판매 업계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고 있는 CHILD FETISH였기에 그들과의 신뢰 관계는 더욱 중요했다. 이 때문에 수장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 이 마스터 DND 플랜 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며 그니쿨에세 선포했다. 그러자 그니쿨은 순간 한숨을 푹 쉬더니 자신의 정장을 한참 뒤지다 하나의 작은 뱃지를 수장의 책상에 격렬히 내리꽂았다. DND 인수 뱃지였다. 참고로 이는 각 팀의 수장이 타 회사 인수 명령을 단 1번 수장에게 강행할 수 있는 도구로서, 인수 비용이 30조 원을 넘기면 사용이 불가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후 수장은 한 달 이내로 CHILD FETISH를 곧바로 인수했으며, 그 비용은 자그마치 27조 원이었다. 또한 그니쿨은 수장에게 마스터 DND 플랜 카드를 제출하여 해당 회사를 약 2년 동안 자신에게 줄 것을 요구했다. 2년 동안 페티시 퍼레이드의 정점을 보여줄 것이라 자신만만하게 외치면서 말이다. 단숨에 인수된 회사의 수장이 된 그니쿨은 곧바로 기존 CHILD FETISH의 슬로건을 ‘페티시의 핵심 가치는 모순된 관계와 감정을 역설하는 것이다.’로 바꿨으며, CHILD FETISH의 CHILD를 과감히 삭제하고 DND를 대신 그곳에 삽입했다. 결국 이렇게 DND FETISH가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고, 퍼레이드 광고팀 전 직원은 2년 동안 DND FETISH의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후 그니쿨은 인간 외피 도베르만과 이중 눈빛을 소유한 어린아이의 사탕을 시작으로 약 20개가 넘는 페티시 광고들을 만들어내어, 기존 CHILD FETISH가 벌어들였던 연수익의 4배에 달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DND VIDEO : https://www.youtube.com/watch?v=7Or2NbQ1D5U
DND 산책 속보 : https://dndnews.co.kr/%ec%82%b0%ec%b1%85-%ed%8c%a8%eb%9f%ac%eb%8b%a4%ec%9e%84-%eb%b6%95%ea%b4%b4-%ea%b0%80%ec%9e%a5%e5%ae%b6%e9%95%b7-%eb%aa%b0%eb%9d%bd/
DND 사탕 관련 정보 : https://dndnews.co.kr/%ec%82%ac%ed%83%95-%ec%97%ad%ec%82%ac-%eb%b0%8f-%ec%a2%85%eb%a5%98/